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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세이

나만의 이름으로 불러주면 더 예뻐보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지루하다면 내 맘대로 색다른 별명을 지어보자. 요리 영상을 찍으면서 내가 만든 음식에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영상의 제목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작업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만들어주기 시작하면서 음식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가? 그림이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일 테지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도통 제목과 이미지가 동떨어진 것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거릴 때도 많다. 물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사람의 이름은 또 어떠한가? 어느 유명한 가수며 배우들의 본명을 알고 나서 그 사람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지는 일도 다반사다.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서 이름을 바꾸는 일도 허다하지 않은가? 하는 일이나 직업이 본디 갖고 있던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서 바꾸기도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이유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름만 바꾼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닐 테지만.
처음으로 요리 영상을 찍고나서 붙인 이름은 "별거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제목이었다. 별거 없지만 자꾸 먹고 싶은 ~, 별거 없지만 입에 쩍쩍 붙는 ~, 가장 보편적이고 소박하면서 겸손한 수식어라고 생각했다. 뭔가 기대했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초라한 내용보다, 별로 기대 없이 봤다가 조금이라도 볼 만했다면 다행이겠다 싶어서 지어준 첫 번째 타이틀이다. 
제목이 별거없다고 하니 진짜로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하면 어떡하냐는 걱정 어린 주위의 시선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초심자의 행운처럼 내 영상은 조회수가 늘어만 갔다. 잡채를 만들어서 올릴 때가 있었는데, 다른 음식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부추를 활용한 터라 "부추를 무지 사랑하는 잡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부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잡채

 

 

 

설 명절 일주일 전에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명절이 아니어도 잘 만들어 먹은 메뉴지만, 마트에서 인삼을 할인해서 사온 덕에 영양보충도 할 겸 닭 한마리에 인삼과 대추까지 넣어 푹 끓여서 만들어 봤다. 집마다 떡국 만드는 법이야 다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닭육수로 만든 떡국에 손이 더 많이 가게 된 이후부터는 소고기 국물은 쓰지 않게 되었다. 떡국이야 떡만 건져 먹는 음식이 아니니 국물이 생명 아닌가? 그 맛을 표현할 만한 이름, 바로 요 거지! 하고 불현듯 떠오는 이름은 "자다가도 생각나는 떡국"이다. 자다가도 생각이 날 정도라면 한번 어찌 만드는지 호기심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떡국

 

 

설 명절 연휴로 여기저기 기름냄새 끊이지 않던 기간에는 집에서 음식 장만에 제사 준비에 고생하는 어머니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명절음식에 지친 당신을 위한 수육"이라는 이름으로 음식 영상을 만들었다. 명절음식을 만드는 이도, 명절음식을 3박 4일내내 먹느라고 지쳤을 이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싶어서...

 

 

수육

 

 

 

최근에는 새로 담근 김치를 영상으로 만들면서 무슨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엄청 고민을 했는데, 이렇게 반짝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운동을 할 때도, tv를 보면서도 머리 한 구석이 계속 이름 짓는라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된다. 1순위와 2순위, 3순위까지 맛과 식감을 살려서 여러 개의 이름을 만든다. 어느 것이 나을까? 또 연신 머리를 굴린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사는 게 거기서 거기 이듯이 어떤 이름을 붙여도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결국, "두고두고 먹고 싶은 우리집 배추김치"로 영상에 이름을 붙였다. 진짜로 두고두고 먹고 싶을 만큼 아끼는 김치니까 한 번쯤 뽐내고 싶어서...

 

 

김치

 

 

 

음식에 무슨 이름을 붙이냐고, 이름 따위가 대수냐고 타박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김 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떠올려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이름이 없었다면 무색에 무취인 존재들이 갑자기 천연색에 향기까지 입힌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이름이 있어서 부를 때마다 정겨워지고 다시 한번 불러보고싶어 진다. 가끔은 이름 짓는 과정이 무의미해지더라도 당분간은 머리를 굴려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즐거움을 느낄 것 같다. 요리를 만들고 영상으로 담아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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