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날, 호텔 앞에 있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암팡파크역으로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천사 같은 언니를 만났다. 방향치에 길치인 낯선 여행자가 헤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너무도 친절하게 부킷빈탕에서 내릴 때까지 동행해 주었다. (돌아올 때가 돼서야 눈치를 챘지만, 쿠알라룸푸르는 문이 열리는 승차장에서 다음 역이나 이전역을 표시하지 않고 종착역을 표시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사랑해"라는 한국말을 해서 한번 더 놀랬는데, 동남아 곳곳에 K - 문화에 대한 관심은 아직 푸릇푸릇해 보였다.
쿠알라룸푸르의 명동이라 불리는 부킷빈탕은 화려한 쇼핑몰과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사람들로 복잡 복잡했다. 이름으로만 듣던 파빌리온 앞의 분수대는 늦은 오후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있었고, 데이트하는 연인이며 쇼핑하러 나온 가족들이며 나와 같은 초짜 여행가들이며... 모두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정신을 쏙 빼는 번잡함을 뚫고 외국인들에게 소문난 잘란알로 야시장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전이라 한산할 것이라는 내 예감은 빗나갔다. 부킷빈탕 지하철역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잘란알로 야시장은 호객하는 소리와 노점들로 우왕좌왕하는 여행자의 발을 이끈다. 더운 열기 가득한 시장통에서 저녁식사를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돌아갈 발걸음을 재촉하니 "언니, 어디가?" 하며 호객하는 식당 종업원의 당찬 한국어가 귓가에 훅하고 들어온다. 밀당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듯 사라지는 손님을 향한 애교 섞인 부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말레이시아의 현지식과 쿠알라룸푸르의 활기찬 시장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3일을 머물던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에서 오랜만에 그랩을 불러봤다. 국립미술관을 목적지로 입력하니 15분 대기하란다.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예약버튼을 눌렀더니 갑자기 취소가 되고 다른 차량으로 대체됐다. 제일 저렴한 자동차로 예약해서일까? 달리는 와중에 살벌하게 느껴지는 차량의 소음, 15년이 넘은 승용차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깡통소리가 난다. 어찌어찌 도착한 국립미술관은 "모국"이라는 의미의 "NUSA"라는 주제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방콕의 BACC처럼 달팽이마냥 올라가면서 관람하기 좋게 만들어진 미술관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과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소리는 없지만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미술관에서 눈호강하는 시간은 빼놓을 수가 없다. (입장료 무료)
쿠알라룸푸르에서 가볼만한 곳 중에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센트럴마켓과 페탈링 야시장 아닐까?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으니 쉬엄쉬엄 걸으면서 구경하기 참 좋은 곳이다. 비가 오거나 땡볕이 뜨거운 한낮이라면 실내에 있는 센트럴마켓에서 눈요기하며 시원한 음료수도 마시고, 친구나 가족들에게 줄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사기에도 적당 할듯하다.
센트럴마켓에서 밖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페탈링 야시장의 입구가 보인다. 짝퉁시장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 그대로 가방, 신발, 양말 할 것 없이 짝퉁천지다. 센트럴마켓이 아기자기한 소품샾같다면 페탈링 야시장은 우리네 남대문시장을 쏙 빼닮았다. 호객행위는 보이지 않았고, 가격을 흥정하는 외국인들이 가끔 보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맞은 두 번째 날 방문한 국립박물관. 실은 국립미술관인줄 알고 갔다가 우연히 들린 곳이다. 미리 검색하고 간 미술관은 입장료가 무료인데, 입구에서 입장료 5링깃을 받길래 그제야 잘못 찾아온 걸 깨달았다. 겸사겸사 왔으니 들어가 보기라도 해야지. 옛날 아주 옛날, 청동기시대 유물들에서부터 현재의 말레이시아 모습이 있기까지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 그 자체였다.
쿠알라룸푸르와 아쉽게 작별하는 마지막날, 밤 비행기로 예약해서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이 남았다. 시외로 나가는 것보다는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 현지인들이 간다는 식물원을 발견했다. 구글맵으로 본 페르다나 식물원은 규모가 상당해 보여서 시간 보내기 안성맞춤일 듯, 내친김에 그랩을 부르고 돌아 돌아 식물원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보이는 푸릇푸릇한 이국의 나무들, 그 사이로 웨딩촬영에 열심인 신혼부부들이 보인다. 아~ 신랑 신부가 기념사진 찍는 곳이구나!! 가끔 데이트하는 커플도 보이고... 한참을 걷다 보니 식물원의 심벌 같은 조형물도 보이고 그 뒤로 커다란 호수가 이어진다. 한낮의 열기로 지쳐갈 즈음, 눈앞에 출구가 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순간 나타난 구세주 같은 출구였다.
길 따라 나가면 큰 대로가 나오겠지 싶어서 은근 발걸음이 빨라질 무렵, 옆으로 돌아서니 국립박물관이 보인다. 알고 보니, 국립박물관 입구에 있는 지하철역에서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국립박물관과 식물원에 관심이 있다면 함께 묶어서 가보면 좋은 여행지. 단, 식물원은 뜨거운 낮시간엔 꼭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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