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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은 밥상을 살찌게 한다

우리 엄마의 18번 요리는 양념게장이다. 게의 계절이 돌아오면 한 번씩 꼭 먹어야 되는 통과의례처럼 우리 집 밥상엔 양념게장이 올라왔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게장 하나면 밥 한 그릇 뚝딱 비울만큼 인기 메뉴였다. 양념게장이 남아있지 않을 때면 등장하는 간장게장은 별미 중의 별미. 간장게장이 상에 올라오면 밥상도 나도 살찌는 소리가 들렸다.

 

꽃게로 만드는 요리

 

어른이 되어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릴 즈음에 연중행사로 하는 습관이 생겼다. 5월에는 햇마늘로 마늘장아찌를, 6월에는 토실토실한 매실로 매실청을 담근다. 6월의 중순 무렵이면 마늘장아찌는 제 맛을 내고 매실은 서서히 매실청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시간과 함께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과 향을 뿜어내며 천천히 발효되어 가는 것이다. 

 

한 여름 반찬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던 마늘장아찌가 밥상에서 사라지고, 바람의 온도가 바뀌면 꽃게의 계절이 다가온다. 엄마가 해준 게장을 먹어만 봤지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예전 그 맛을 기억해내며 여기저기 레시피들을 찾아 헤맸다. 드디어 10월이 돌아왔다. 봄의 꽃게는 알이 꽉 찬 암컷이 최고지만, 가을의 꽃게는 살이 꽉 찬 수컷을 선택해야 한다.

 

꽃게를 사 온 날은 잔칫날처럼 바쁘다. 맛을 결정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신선한 꽃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신선할 때 조리하는 것이 포인트!! 

올해는 꽃게가 풍년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마트에 가니 3kg에 열두 마리 정도 들어있는 꽃게를 판매하고 있다. 박스를 개봉해보니 꽃게들이 아직도 살아있었는지 팔딱팔딱거린다. 냉수에 담가 놓고 깨끗이 손질하는 것도 일인데, 어찌나 싱싱한지 손대기 겁이 나서 가위를 들고 날카로운 부분부터 자르고 칫솔로 구석구석 씻고 물기를 빼준다.

 

따끈한 국물도 생각나서 살이 꽉 찬 수게를 몇 마리 손질해서 꽃게탕을 끓인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야채를 손질한 후 꽃게를 넣어 바글바글 끓어오를 때 수제비를 뜬다. 미나리는 맨 나중에 살짝 올려서 숨만 죽이고 불을 꺼야 질기지 않고 제 맛이 난다. 기본 밑간을 위해 된장 한 스푼을 넣어서 인지 비린 맛도 잡고 구수하면서 칼칼하니 딱 좋다.

간장게장 만드는 순서

 

나머지 게들은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간장을 준비한다. 간장과 물과 청주를 붓고, 홍고추와 마늘, 생강, 설탕을 넣어 끓여서 식혀둔다. 미리 만들어둔 다시물이 있어서 이번엔 함께 섞어서 게 통에 부은 다음 냉장고로 직행. 

 

5일 후에 반찬이 궁해질 무렵, 간장게장을 꺼내 보니 그럴싸해 보인다. 간장이 너무 짜지는 않았는지 걱정 반, 기대 반. 갓 지은 밥에 간장게장의 살만 파서 얹어 한 입 먹어보니, 입 안이 황홀해진다. 게 껍데기에 밥을 넣고 슥슥 비벼먹어도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생각이라면 간장물만 따로 빼서 한번 끓여 식힌 후 다시 붓고 보관하면 되지만, 밥 맛이 꿀맛이라 오래 두고 먹을 일이 없어진다. 

 

간장게장의 남은 간장물은 한 번 끓여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처음엔 몰라서 그냥 버리곤 했는데, 보관해 두었던 간장물로 장조림을 해 보고 나서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꽈리고추와 메추리알을 준비해서 소고기를 조릴 때 간장물을 섞어주니 감칠맛이 터진다. 

 

간장게장 재료

 

신선한 게 몇 마리로 행복해지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면 10월을 놓치면 안 된다. 꽃게를 통으로 쪄서 젓가락으로 쏙 빼먹는 재미도 있지만, 뜨끈뜨끈한 수제비를 뜬 꽃게탕과 짭조름한 간장게장은 평범한 밥상을 수라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임금님 드시는 수라상이 별 것이던가? 내 가족이 맛있고 건강하게 먹으면 그것이 바로 수라상이지. 올 가을이 가기 전에 밥상이 살찌는, 나와 내 가족이 살찌는 밥상을 다시 한번 꽃게로 만들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