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가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빵이 있다. 소보루와 단팥빵은 고전 중의 고전에 속하고, 오늘같이 찬바람이 부는 날엔 따뜻한 차 한잔과 어울리는 모카빵이 제격이다. 갓 구운 커피 향 가득한 빵 한 조각을 떠올리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여고시절 자율학습시간에 매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이었던 소보루빵과 단팥빵은 오래된 보석처럼 여전히 빵집에 자리 잡고 있고, 그 후 나의 단골 메뉴였던 햄버거빵은 샐러드 빵과 토스트 빵 등 새 옷을 입고 다양해졌다.
언제부터 빵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빵집을 지나갈 때 코끝에서 느껴지는 빵 굽는 냄새는 나에겐 일종의 향수 같았다.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제과제빵을 빼놓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에 있는 제빵재료를 하나씩 꺼내보니 드라이이스트, 버터, 계란이 냉장고 안에 보인다. 말린 자두도 보이고, 한여름 마트에서 할인할 때 사두었던 커피믹스가 아직 잔뜩 남아있다. 혼자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제빵 재료로는 모카빵 만들기 안성맞춤이다.
한낮의 온도는 아직도 28도까지 올라가니 이른 점심을 먹은 후에 시작하면 상온에서 발효하기도 딱 좋은 날씨가 틀림없다. 강력분과 박력분을 주섬주섬 꺼내놓고, 계란과 버터는 너무 차가우면 안 되니 미리 꺼내 놓는다. 건포도가 있었다면 미리 전처리를 위해 미지근한 물이나 럼주에 담가 두어야 하지만, 건자두는 진득진득하니 건포도만 한 크기로 잘라만 놓았다.
제빵제과를 배우던 시절에 사놓은 오래된 핑크색 저울을 꺼내 들고, 계량 준비를 한다. 요즘엔 종이 포일이 있어 설거지거리도 줄고 참 편리해졌다. 종이 포일을 적당히 잘라 그 위에 가루류의 계량을 시작한다. 소금, 이스트, 설탕, 베이킹파우더를 비율에 맞춰 준비해놓고, 우유는 전자렌즈에 살짝 데워놓고, 강력분과 박력분은 체에 쳐셔 뭉침 없이 걸러내 준다.
빵 반죽에 필요한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15분 간격으로 반죽기 없이 손으로 천천히 늘려서 접어주고, 쉬었다가 다시 한번. 쉬는 동안에는 젖은 면보를 덮어주고...
반죽기로 돌리고 랩으로 씌워서 발효시킨 것과 비교해 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엔 어떻게 다를까?
1시간 정도 발효시킨 후에 보니, 발효가 훨씬 잘 되어 있다. 왠지 빵의 결도 살아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스친다. 제빵학원 오븐에서 하면 뭘 해도 맛있는데 집에서 만들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어서 오븐 때문일 거라고 짐작만 하다가 발효시간을 넉넉히 주고, 손반죽을 천천히 진행해보니 결과물이 달라진다.
토핑물 반죽은 미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바로 꺼내서 중간 발효까지 끝난 빵 반죽에 감싼 후에 2차 발효를 진행해야 했는데, 생밤을 까서 조린 후 넣느라고 타이밍이 안 맞았다. 갑자기 밤식빵이 생각나서 욕심부린 탓이다.
버터가 상온에서 녹아서인지 토핑 반죽이 너무 질어져 들러붙고 흘러내린다. 아차 하는 새에 모양이 엉망진창이 됐지만, 일단 한번 예열한 오븐에 넣는다. 180도에서 10분, 160도에서 20분. 빵 냄새가 솔솔 난다.
빵 굽는 냄새는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사람 사는 냄새, 부엌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 냄새는 너무 따뜻하다. 달리 빵순이가 아니다. 냄새부터 좋아하니...
띵띵 띵. 오븐의 알람 소리에 맞춰 완성된 빵을 꺼내 식힘망으로 직진한다. 빵이 식기도 전에 옆구리를 살짝 뜯어먹는 재미. 으~음, 빵이 제대로 나왔다. 쫄깃한 식감이다. 토핑이 좀 엉망이었지만, 내가 만든 빵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모양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모카빵은 기계 반죽으로 두 번, 손반죽으로 한번 만들어봤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손반죽으로 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늘려서 접어주는 반죽법이 생각보다 빵의 결이 잘 나왔고, 촉감도 쫄깃했다.
반죽기에서 돌리듯이, 잔뜩 힘을 주고 100번씩 밀고 당기는 반죽법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해야 빵 반죽이 제대로 될 거라고 막연히 수긍을 했지만, 속도나 횟수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가 보다.
처음 배울 때의 레시피에 최근 방송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합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간다. 기존의 습관대로 만들 수도 있지만 조금씩 다르게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니까.
아침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찬바람 나는 계절엔 커피 향 가득한 모카빵이 특히나 어울리는데, 당분간 아침 식탁에 모카빵이 올라오면 뜨거운 카페라테와 어울리는 메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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